이미지 출처 : 셔터스톡

십여년 전에 불기소처분이 난 형사고소사건에 대한 기록검토를 의뢰받은 적이 있었다. 여중생이 강간피해를 입은 후 고통을 호소하는 편지를 써놓고 가출한 사건이었다. 편지를 발견한 피해자의 아버지가 형사고소를 했었는데, 그 당시 수사검사가 수사 막바지에 피해자의 아버지에게 ‘딸을 무고죄 범죄자로 만들고 싶냐’ 라고 겁을 주며 고소취소를 종용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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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피해자는 경찰조사, 검찰 조사시 피해진술을 하면서 아는 오빠와 2번의 성관계가 있었는데, 처음 성관계는 강간이었고, 두 번째 성관계는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여중생의 피해진술에 대해 조사관이 질문이 조서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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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떻게 강간을 한 가해자와 그 후 다시 성관계를 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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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관의 질문에 대해 피해자가 첫 성관계 때에는 싫다고 거부하고, 저항했는데 가해자가 강제로 삽입을 했기 때문에 강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번째 성관계시에는 피해자가 거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폭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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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관이 다시 피해여중생에게 그렇다면 처음 성폭력 당시 어떻게 저항을 했다는 것인지 좀 더 자세히 진술해 달라고 질문한다. 이에 피해 여중생의 진술 중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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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집에 있는데 오빠(피해자의 오빠 친구임)가 우리 집으로 들어왔어요. 제가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오빠가 제 옷을 벗기고 성관계를 하려고 해서 제가 발버둥치며 하지 말라고 했어요..... 그런데 오빠가 제 귓불에 키스할 때 제가 신음소리를 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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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여중생이 신음소리를 냈다는 진술을 하자 수사관이 ‘아니 어떻게 강간피해를 입었다고 하면서 신음소리를 낼 수가 있나요? 저항했다는 것이 사실인가요?’라고 재차 추궁한다.

피해자의 진술은 명확했다. ‘저는 귀 뒷부분이 성감대예요, 누가 귀를 만지거나 키스를 하면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가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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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신음소리 관련 진술이 아마도 검사가 불기소처분을 하고 피해자의 무고혐의를 인지할 것인지 고민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위 사건은 증거불충분 무혐의 처분이 나왔고, 검사는 피해학생의 연령, 고소취하한 점 등을 감안하여 무고죄로 인지하지는 않았음을 적선 베푸는 것처럼 피해자 아버지에게 설명해 준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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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지원단체로부터 위 사건의 처분성 및 검사의 태도에 대한 적절성 등에 대한 자문의뢰를 받아 기록을 읽은 후 제일 먼저 한 것은 활동가 선생님이 피해자에게 연락하여 ‘피해학생의 솔직함’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전해주라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나쁜 의도가 있었다면 성폭력 당시 피해자가 신음소리를 낸 사실을 숨기거나 부인하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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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피해자는 성폭력 당시 자신의 신체가 보인 반응을 솔직하게 진술했다. 비록 피해자 신체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가해자의 성적 자극에 반응하였으나, 피해자가 성관계에 대해 허락하지 않았고 거부의사를 밝히고 가해자를 밀쳐 내는 등의 저항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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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도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한다. 원하지 않는 성적 접촉행위 중에도 외부의 성적 자극에 대해 피해자의 신체가 원초적인 반응을 보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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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진행하고 있는 성폭력 사건 중에서도 몇 차례 연이은 기습추행 과정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추행행위에 호응하는 반응을 보인 사건이 있다. 성폭력피해자가 피해 당시 보이는 신체 반응이 곧 가해자의 성적 접촉행위에 대한 동의, 허락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곧 선고기일인데 어떤 판단이 내려질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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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지만, 외국에서는 이와 관련한 유의미한 논쟁들이 계속되고 있고, 호주에서는 피해자의 성적 흥분이 성관계에 대한 동의로 볼 수 없다는 과학적 소견을 법정에서 채택하도록 하고 있으며, 배심원들이 성폭력사건에 대해 근거 없는 보편적 편견(강간 피해자는 성적 자극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이 유무죄 판단에 투영되지 않도록 재판관들이 배심원들을 교육시키도록 하고 있다.어떤 사람은 칼에 찔린 상태에서 기절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상처를 핸드폰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똑같은 피해상황에 대해 피해자들이 보이는 반응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가 동의하지 않은 성적 자극에 대해 피해자의 신체가 피해자 의지와 상관없이 신음 등의 형태로 반응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원초적 반응은 말 그대로 피해자 신체의 자동반사적 반응일 뿐 피해자의 의사와 무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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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럽힘 당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을 누군가 간지럼 태웠을 때 머릿속으로는 짜증이 나지만 피해자 의지와 상관없이 얼굴에 미소를 짓게 되거나 웃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피해자의 신체가 웃음소리를 냈다고 해서 피해자가 간지럽힘을 즐긴 것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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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피해자가 성폭력을 당하는 과정에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피해자의 신체가 보인 반응은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것이다. 피해자의 신체반응과 성폭력은 양립이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피해자의 신체반응을 곧 피해자의 성관계에 대한 동의로 추정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관계시 인간의 신체가 보이는 반응은 성적 접촉에 대한 자동반사적 반응일 뿐 이것은 동의와 무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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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몸이 보이는 신체반응이 성폭력을 부정시킨다면 그것은 정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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