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하반기 싱가포르 폭력피해자지원기관 방문 후기-

<폭력의 발생 가능성 자체를 근절하는 것이 목적이다!>

작성자 : 변호사 김재련

2009년 대만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후 2번째로 싱가포르 성폭력기관방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지난해에 뵈었던 열정 가득한 참가자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미리부터 기대되는 여행(女行)이었다.

영원한 29세 소녀 곽분이 선생님, 4개국어에 능통할 뿐 아니라 수영에도 일가견이 있는 대모 김정숙 소장님, 언제 뵈어도 차분하신 고향마을 윤은소 소장님, 멋쟁이 조중신 소장님, 이동막걸리 뒤풀이를 약속하신 이문환소장님, 얼굴도 말씨도 예쁜 행가래로 선생님들, 헤어스타일이 인상적이신 손숙자 선생님, 걸죽한 농담으로 여유를 주시는 우순남 선생님, '아 옛날이여' 연애사를 들려주신 김현정 소장님, 고3딸도 팽개(?)치고 오신 대범한 이현혜 선생님, 정장에 슬리퍼를 신고 있어도 귀엽기만한 최윤정 변호사님, 감기로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웠던 정다이 학생......

지난 해 대만 방문의 가장 큰 수확은, 성폭력방지법 대신 성침해 방지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 피해자 및 참고인의 인적사항을 기록하지 않고 고유한 번호로만 특정한다는 것, 경찰조사시 조사자와 피조사자가 모두 실시간으로 조서내용을 모니터를 통해 확인하고 즉각적인 수정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 방문 첫째 날, 'PAVE(PROMOTING ALTERNATIVES TO VIOLENCE)'방문을 통해 얻은 수확은 '사람에 대한 믿음-가정폭력행위자에 대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신뢰를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가정폭력행위자에 대해 우리나라로 치자면 보호처분에 해당하는 기간이 '평생'이라는 점, 가정폭력피해자는 굳이 법원에 가서 신청을 하지 않고서도 PAVE'와 같은 상담기관을 찾아가 ‘VIDEO LINK'를 통해 가정법원 판사 앞에서 선서하고 폭력피해자임을 증언할 수 있으며, 그 경우 가정법원에서는 가정폭력행위자에게 PPO(PERSONAL PROTECT ORDER)를 발령하기 이전에 피해자에 대한 접근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해 신청이 있은 때로부터 24시간 이내에 행위자 주거지로 소환장을 발부한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임시조치 신청을 하더라도 최종적으로 결정이 나올 때까지 최소 1달 이상이 걸리는 점에 비추어 보면 입이 벌어질 정도로 부러웠다. 우리나라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서 가정폭력으로 인한 보호처분 사건에 대해 다른 사건에 비해 신속하게 처리할 것을 명문규정으로 두고 있는 바, 싱가포르의 사례를 우리 가정법원 보호처분 사건 절차에 즉시 응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가정폭력피해자가 피해주장을 하면 그에 관한 객관적 증거가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가정법원 판사가 심리를 개시하는 것이 가능하고, 치료받은 전력이 있다고 할 경우 피해자가 직접 해당 병원에 가서 진단서 등을 발부받아 첨부할 필요없이 피해자 주장만 있으면 가정법원 판사가 해당 병원에 관련 자료에 대한 송부요청을 한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치료받은 전력 자체가 없다하더라도 폭력에 대한 피해자 진술이 있을 경우 판사가 PPO발령을 하는 것이 가능하며 이는 이미 발생한 폭력에 대한 근절 뿐 아니라 폭력의 발생 가능성 자체를 근절하고자 하는 것이 가정폭력사건에 대한 접근목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피해자의 신청에 의해 가정법원 판사의 PPO결정이 나오는데 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주일 내지 2주일이고, 위 결정이 나오기 이전에 임시조치처분이 내려지는 것이 가능하며, 만약 가정폭력행위자가 PPO결정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였을 경우 법정모독죄가 추가되어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고 한다.(우리나라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40조에서는 8가지 보호처분에 대해 규정하고 있고, 위 보호처분 종류 중 ‘접근금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친권행사의 제한’규정에 위반하였을 경우에도 보호처분불이행죄 규정에 의해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동법 제 63조 참조)

싱가포르는 1997년 여성법을 개정하여 폭력의 범위를 스토킹, 언어폭력 등으로 확대하고 있고, 배우자가 이혼한 이후에도 PPO결정의 효력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바, 그 당연한 결과로 언어폭력 등의 경우 녹음을 하지 않는 한 증거확보자체가 불가능하기에 증거보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기초로 판단할 수 밖에 없고, PPO결정의 효력이 이혼이후에도 평생 지속될 수 있기 때문에 가정폭력행위자 혹은 잠재적 폭력행위자군에 대한 일반예방효과 또한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폭력 사건의 경우 신속성이 담보되지 않을 경우 가정구성원의 불안정한 상태유지로 인해 가정해체가 불가피하고, 가정폭력 행위자에 대한 엄격한 제재 및 제재의 지속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가정폭력의 근절이 어려워지며, 또한 건강한 가정의 회복을 위해 행위자에 대해 선입견을 버린 상태에서 ‘가정폭력’을 인지하고 상대화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행위를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에서 싱가포르의 가정폭력사건에 대한 처리절차, 피해자를 지원하는 유기적인 시스템, 행위자에 대한 상담프로그램은 굉장히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PAVE의 활동가 SOH SIEW FONG(쉬펑) 선생님은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과 사회는 바뀔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도 희망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