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하반기 대만 폭력피해자지원기관 방문 후기-

배려와 소통이 있는 ‘그곳’을 다녀오다

작성자 : 변호사 김재련

1. 들어가며

국내에 있는 성폭력상담소에서 주관하여 외국에 있는 성폭력상담기관, 경찰서 등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이 매년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한국성폭력위기센타 이사이자, 자문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많은 성폭력피해사례들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수사관행의 문제점 등에 대해 평소 외국사례들을 지적하면서 비판하는 일에 부지런했었다. 그렇기에 빠듯한 재판일정 때문에 기관방문을 선뜻 결심하지 못했으나, 배우는 만큼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과감히 방문결정을 내렸다.

다른 나라 방문이니 약간의 휴식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출국날 인천공항에서 만난 각 지역 상담소 분들의 결연한 모습, 소장님의 씩씩한 일정 발표에 ‘음...빡빡한 일정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에 일찌감치 휴식기대는 버렸다.

2009. 8.24. 점심 무렵 대만에 도착한 직후 간단한 식사를 뒤로하고 ‘Taoyuan Police Bureau'를 방문했다. 경찰청사 입구에 이미 관련자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곧 이어 세미나실에서 그들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2. 그곳은 배려와 소통이 있는 곳이었다.

가. 특이하게도 그들은 성폭력범죄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침해범죄’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사실 이는 특이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용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폭력범죄라고 하면 폭력성이 수반되어야 범죄가 성립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되고,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폭행, 협박이 수반될 것을 성폭력범죄 성립요건으로 요구한다. 그것도 협의 혹은 최협의의 폭행, 협박을 요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반항하거나 저항하지 못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없다면 성폭력이 아닌 것처럼 피해자를 다그치는 것이 실정이다.

그러나 성폭력범죄의 보호법익을 생각해보자. ‘성적 자기결정권’ 이것이 바로 성폭력범죄의 보호법익인 것이다, 그리고 성적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성적 결정권에 기초한 의사표시에 반하는 행위가 있으면 바로 침해되는 법익인 것이다.

그런 본질적 측면에서 봤을 때 성폭력범죄라는 용어 보다는, 성적 자기결정권의 침해에 대한 처벌범죄에 대해 ‘성침해범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는 가해자 입장에서 ‘폭력성’을 전제로 하여 기존에 사용하던 성폭력범죄라는 용어에 대한 변경을 심각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나. 성침해증거가 명확한 경우 3시간 안에 사건을 검찰부로 송치한다고 한다.

성침해신고가 있을 경우 담당조사부인 ‘婦幼隊’는 여자경찰이 정복이 아닌 평상복 차림을 한 상태에서 피해자를 대동하여 병원으로 가서 증거물을 수집하도록 조치하고, 병원에서 즉시 의사가 증거물을 채취하여 피해자와 경찰관이 있는 상태에서 증거물을 확인한 후 밀봉하여 경찰서로 보내고, 경찰은 성침해범죄 증거가 명확히 수집된 경우 3시간 이내에 검찰부로 사건을 옮겨 신속히 처리하도록 절차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피해자는 경찰단계에서 여러 차례 조사를 받아야 하고, 가해자가 부인할 경우 대질조사 등을 하면서 불구속 사건의 경우 몇 달씩 시달리다가 지쳐버려 가해자처벌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도 상당하다.

그런데 3시간만에 사건을 송치한다니.....이는 피해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불가능한 제도적 장치인 것이다. ‘법을 위해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법이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었고, 한 편 국내 사정을 돌이켜보며, 내가 악악거리며 싸움닭처럼 수사관들과 싸워왔던 무수한 사건들, 그리고 의뢰인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치며 씁쓸했다.

다. 먼저 현장조사를 하고 후에 서면조사를 한다.

성침해 사건이 발생하였을 경우 증거보전 등의 차원에서 수사관들은 먼저 현장조사를 하고 그 후 필록 즉 서면조사를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성폭력신고를 하면 일단 경찰이 피해자 조사를 먼저 하면서 ‘미주알고주알 혹 피해자가 꽃뱀은 아닌지 의심부터 하면서 조사하여 피해자 기를 죽여 놓는다, 그리고 다시 가해자를 불러 조사한 후 대질조사를 강행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 가해자는 피해현장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모텔 주인 등과 말을 맞추어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수사관이 미처 확보하지 못한 ’CCTV 촬영사진‘ 등은 나중에는 이미 덮어쓰기가 되어 확보할래야 확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피해자를 의심하기 전에 피해신고가 있을 경우 먼저 현장조사를 철저히 한다면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처분이 나와 피해자가 억울하게 이중고통을 받는 경우가 절반 이상으로 줄어드리라 확신한다.

라. 소통의 미학은 실제 조사가 행해지는 조사실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경찰들로부터 브리핑을 받은 후 실제 조사가 행해지는 경찰서 조사실 내부를 탐방하였다. 특이하게도 조사관이 안는 자리와 그 맞은편 양쪽에 컴퓨터 모니터가 등을 맞대고 공존하고 있었다.

담당경찰관 설명에 의하면 조사관이 조사하는 내용을 실시간으로 고소인 혹은 피고소인이 조사받으면서 바로바로 확인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덧붙여 미소를 띠며 종이도 절약할 수 있다고 했다.

모니터는 등을 맞대고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지만, 조사자와 피조사자가 서로 소통을 하고 있는 것이고, 이는 곧 기관의 국민에 대한 배려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전세계적으로 IT강국인 우리나라, 국민당 컴퓨터 보급률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는 왜 그런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을까, 왜 그런 배려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3. 돌아오며

경찰서방문에 이어 사회복지단체방문, 대만내정부 방문으로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꿈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배우지 않으면 어떠한 성장도 할 수 없다. 그러나 계속 꿈만 꾸고, 배우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의미없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만에서의 경험이 우리 방문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작은 움직임이라도 이끌어내야할 것이다. 그래야 우리의 방문은 앞으로도 의미있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소통과 배려가 있는 그곳 대만을 다녀왔다. 언젠가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후에도 ‘소통과 배려의 나라’를 다녀왔다고 기록할 수 있길 기대한다.  끝.